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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조금은 긴 쉼표 29

사막의 꿈

사막의 꿈 솔정수 윤성조 몇천 년, 아니 몇만 년을 도저히 멸망해 본 적 없는 영토가 있다이념도 법도 군주도 없으니 도무지 도발하는 적도 없어멸망하고 싶어도 멸망 못 하는 제국이 있다모래 위에 자기를 세워 무너지기를 예언처럼 목타게 기다리다기다림 만큼 견고해지고 마는, 멸망이 열망인 불멸의 사상누각 왕국이 있다 그 나라에서는 태양처럼 사그라질 줄 모르는 태평성대에 지쳐모래알보다 많은 적막들이 멸망으로 망명을 시도하다가 끝내멸망을 찾지 못하고 주저앉아 사구가 되어 뜨거운 고요로 투덜대며제 멸망의 가려운 꿈을 바람에다 비비면서 나지막이 늙어가는 것이일상이고 역사면서 번영이자 내란이고 전쟁이며 평화다

함초 (산문시 ver.)

함초                                                솔정수 윤성조  삼십여 년 전, 영등포역 뒤쪽에 아직 아파트 단지 대신 슬레이트 지붕에 군데군데 방수용 천막 덮어 얹은 고만고만한 집들이 더덕더덕 있던 시절에 창문 낮은 방에서 같이 자취를 했던, 제봉공장 미싱공 친구 녀석이 IMF때 사장은 임금 채납한 채 야반도주해 버리고 마음 다 줬던 여자도 떠나 버려, 다시는 서울 쪽은 돌아보지도 않겠다며 해남 사촌 형네 염전에 내려와 염부가 되었다는 소식을 이태 전에야 알음알이로 듣고는 해남에 가서 만호 염전에 들렀는데 그새 아이가 세 명이 된 내 안부가 싱겁다며 30킬로짜리 천일염 세 포대를 막무가내 내 차에다 실어 버리고는 이제는 먼 나라에서 소금맛 좋아할 만한 여자 찾기..

행간

행간                                                             솔정수 윤성조  통화연결음과 통화연결음 사이귓속으로 세상 모든 침묵 떼가 참 익숙하게도슬그머니 기어 들어와 앉네 노아의 대홍수 때, 짐승도 아닌 저것들은 그렇게방주에도 무임승선했으리 통화연결음과 통화연결음 사이40일의 우기가 지나고 내 오른쪽 귀는닿을 데 없는 무동력 방주가 되어 다 잠긴 세상의 소리 위에 떠 있는데 내릴 데를 아직 모르는 저 침묵들의 아우성 노아는 왜저 시끄러운 것들의 무임승선을 눈감아 주었는지

벚꽃 심청

벚꽃 심청                                             솔정수 윤성조      치맛단에 바람이 일더니살짝 흔들리던 마지막 기도, 이윽고꽃대 끝에 올라선 그녀무명 속치마 뒤집어 쓰고는 허공을 내딛다 목숨보다 가마아득 짙푸른 소망으로 스미려 질끈 하얗게 절망을 눈감는투. 신. 공. 양. 허공을 밟으며 숨차게 눈먼 바람들의 파도 속으로기어이 내려오던 발자국의 궤적이4월의 심연에 닿으면, 끝내 파르르눈멀었던 계절을 벗고 푸른 눈 비벼 뜨는벚나무 가지들의전율

불치

불치                                                                  솔정수 윤성조  노을이 앓는 치명적인 회상 중독 증상에 표정 없이500mg 고요를 처방하는 무면허 땅거미의 위조 신분증 사본 위로 복사되지 않는 기억에 대한얼마 남지 않은 갱신기간 통지서 위로 예고도 없이 멀어져간 발자국 소리의점점 두꺼워져 가는 환청 위로 노숙할 자리를 까는 몸살기 난 어둠, 그위태로운 신열 위로 간간이 부정맥을 앓는 눈발이 서늘하게 얹어주는쌓이지 않을 위로慰勞 위에 아무도 위로해 주지 못할 이 몹쓸 자각 증상 한 줄 - "나는 그대를 차마 앓아 본 적이 없습니다."

누가

누가                                                    솔정수 윤성조  누가 불법을 저지른 적 없는 가을을강제 철거하려는가 수은주처럼 줄어드는 공터 풀밭 구석굴삭기, 21톤짜리 침묵이 읽어 내려가는 철거 최후통첩문 쓰르륵쓰르륵 찌르르륵찌르르륵쓰러질 듯 쓰려도, 찌를 듯이 시려도 울음이 전부인 목숨들의풀잎 위, 더는 내려갈 데 없는 밤샘 농성은6등성 별빛보다도 가마아득한데 벌레의 외침이 벌레만도 못하게 될 때가을은 이윽고 무너져 내리고야 말지니 하, 바람이 수상하다가로등은 회색 깃을 바짝 올려 세우고굴삭기 삽 위 달빛이 철거 용역 쇠 파이프처럼 번뜩이는 밤 불법을 저지른 적 없는 이 공터 풀밭의 가을을 누가 강제 철거하려는가

한결같이

한결같이                                                     솔정수 윤성조  전에는 붉은 조명이 새어 나오는 심야 영업집이었다가한때는 영험하다는 점집이기도 했고언제는 동태찌개를 제법 잘 끓인다는 식당이었고한번은 이발소였다가 잠시 세탁소를 거쳐 새로 식료품 가게가 들어선 집 앞을 십몇 년을 은행에서 일하다가몇 달 실업급여로 살던 백수 시인이기도 했고잠시 학원 강사로 있다가체육관 관장이면서 공사판 일용직도 해보고는 배송일을 거쳐 이제는 추모공원에서 일하는 내가무슨 몇백 생애 묵은 기억처럼 익숙하게 지나가는

열외시인 5 - 소주잔 속 사이다

열외시인 5           - 소주잔 속 사이다                                                                                   솔정수 윤성조  아는 시인에게 이끌려 간, 그가 속한 문인들 모임에서한 시인이 자신은 아무개 시인을 아주 좋아하는데그의 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길래솔직히 그의 시가 내게는 난해해서 조금밖에 읽어보지 못했노라고 하자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그럼 어느 시인을 좋아하는지 묻는다아직은 읽어본 시인보다 읽어보지 못한 시인이 훨씬 많은 데다한 사람의 시를 다 좋아할 만한 시인을 아직 만나지 못해 딱히누구누구를 좋아하기보다는 누구의 시든, 이를테면 *장편掌篇같이 길지 않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그림이 그려지는 시를 좋아한다는,..

新창세기

新창세기                                              솔정수 윤성조  차마 경건하게 어리석어져라 산마루에다 방주를 지은 노아 따라구름 한 점 없던 날에 예보 없는 홍수를 피해 산길 오르던,이 세상 지금 살아 있는 모든 현명한 種의 어리석디어리석었던 어미 아비들 행렬이 그러했으니 어리석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현명한 삶의 본능이냐무모하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정밀한 신앙의 계측이냐 아직 비구름 아니 보이는 날에달콤하게 축축한 흙냄새 다시 돌아보지 않고화단 넘어 콘크리트 광야를 가로질러 돌벽을 타고 어느 높은 곳, 본 적 없는 방주 찾아 없는 길 더듬어 만드는 개미들, 목마름처럼 긴긴 어리석디어리석은 어미 아비들의 질긴 家系圖의 행렬이 쉬이 어리석어 본 적, 감히 무모해 본 ..

내가 정말 시인이었을 적에

내가 정말 시인이었을 적에                                          솔정수 윤성조  국립 박물관 한편 적갈색 민무늬 토기 표면 조각조각 이어 붙인 자국들은겨우 몇백, 겨우 몇천 생애쯤 전 문자 같은 거 필요 없어 모든 야만이 정말 날것의 시였던그야말로 불립문자 시대에,흙덩이 반죽 주물러 울을 짓는 황톳빛 벌거벗은 등짝의 땀줄기가부끄러울 것 없는 시어의 조탁이었을 때에,무늬 없음이 모든 무늬이고 퇴고이고 완성이었던 무렵에,불과 그늘 속에서 텅 빈 행간이 제법 단단해진다는 것을알아채고는 불 속에다 침묵을 넣고 굽기 시작하던 시절에 어느 고인돌 아래 고이 누운 내 서늘한 갈빗대 그늘에다 식혔던속살 벌건 내 선사先史 시어, 그 뜨거운 어절들의 창세기創世記    *울 : 속이 비고..

물띠

물띠                                                솔정수 윤성조  바다에서 길이란 가야 하는 만큼 길게 베이고야 마는 상처 그 상처가 배를 밀고 그 상처가 방향이 되고 그 상처 끝이 뭍이 되니 사람에게 사람이 건너야 할 물이고 사람에게 사람이 보이지 않는 뭍인,사람과 사람의 바다에서 상처만큼 확실한 길이란,상처만큼 가야 할 이유란도무지 없네    *물띠 : 배가 지나간 뒤 생기는 물거품의 긴 줄기

전이

전이    - 이제는 추억으로 전이돼 버린 故 김형훈 형님께                                                              솔정수 윤성조  보름 전 난산을 했던 백구와 갓 눈뜬 새끼들을 항암 중인 형훈 씨가 살짝 들여다봅니다삶과 삶이 그윽이 눈을 엮는 창고 구석 그늘 속자기는 이제 맛도 기억 못 하는 고깃국을 슬며시 밀어주는 형훈 씨 깡마른 손바닥을 어미 백구는 고깃국보다 맛있게 핥고 젖으로 전이되어 오는 짭조름한 손바닥 맛을 새끼들이 쪽쪽 빨아댑니다그깟 위쯤이야 없어도 배부른 아침 살아 있다는 게 참 간지럽게전이되어 오는

총의 눈물 - 다큐 "아프리카의 눈물"을 보고

총의 눈물       - 다큐 "아프리카의 눈물"을 보고                                                                  솔정수 윤성조  에티오피아에서도 케냐에서도 멀리 내어 쫓긴 변방바닥 마른 강줄기보다 더 길어버린 가뭄에 약탈이 생계가 되어버린냥가톰족 움막촌에 사흘 전 먹은 반 줌 옥수수 범벅이 전부인 젖 마른 아낙의 장신구는총 맞아 죽은 남편의 탄약띠,30여 마리 소 떼를 뺏기고 복수를 준비하는 21명 식솔의 가장에겐AK-47 소총 한 정이 전 재산이다 작대기 대신 방아쇠를 손에 건 목동이 총알을 사기 위해 소를 먹이고또 누구는 그 소 떼를 뺏으려 소총을 사는,물보다 흔한 피가 마른 땅을 적시고무덤 위 풀들로 소를 살찌우는 무덤 투성이 초원에, 낮..

눈雪을 천장天葬하다

눈雪을 천장 天葬 하다                                                       솔정수 윤성조  어둠을 휘젖는 저 눈바람 소리 속에는히말라야 어느 마루턱독수리 떼에게 시신 조각들을 뿌려주는라마 승려의 허연 염불이 묻어 있다 모여드는 독수리들의 날갯짓처럼 바람 소리가유리창에 한 겹 발라질 때마다가엾은 눈의 외롭게 식어가는 체온이룽다가 되어 펄럭이고 있으니, 계절 탓은 아니다내 나이 탓도 도무지 아니다, 그저 글을 내려놓은 지 오래되어 시어가 녹슬어 버린 시인의색 바랜 동네에 내린 탓에 눈은시어詩語 대신 시어屍語가 되어 누워 제 몸을 천장하고바람은 근거 없는 환생이나 해탈의 약속을아주 오래된 위로처럼 읊조리고 있을 뿐이다 날이 새면 내 검은 옷이 하얀 골목길에 꽤나 잘..

열외시인 4 - 사기 모의

열외시인 4           - 사기 모의                                                                    솔정수 윤성조  시 속의 고독과 아픔과 사랑을 믿는 사람이야말로로맨티시스트다 알 수 없는 싯구절은 무슨 심오한 의미가 숨어있을 거라 믿는 사람이야말로철학자다 시인이 쓴 시는 다 시라 믿는 사람이야말로시인이다 서점이든 도서관에서든 이름 모를 시인의 시집에 선뜻 손을 뻗는 사람이야말로포스트모더니스트다 집사람도 안 읽어 주는 내 시를 기꺼이 읽는 사람이야말로휴머니스트다 세상에 그런 로맨티시스트와 철학자와 시인과 포스트모더니스트와 휴머니스트들이 아직은많아서 집사람도 덮는 내 시를 누군가 읽어 주리라 믿는 나야말로몽상가다 로맨티시스트고 철학가이며 시인..

콩국

콩국                                                                솔정수 윤성조  며칠 냉전기에 아내가 출근하고 나서야 따로 아침을 챙기려는데냄비에 콩국이 설설, 제기랄 늘 이런 식이다, 집사람은 얼음처럼 꽁한 가슴 풀풀 국 속 콩가루처럼 풀려버려 다른 반찬들 꺼낼 일도 끝내 뺏겨버린 내사콩국에다 뭉클뭉클 밤이나 말아 먹을 수밖에 다섯 살 적에 미숫가룬 줄 알고 몰래 퍼먹던 콩가루에목이 막혀 죽을 뻔했던 기억도 오늘은 뜨겁게도술술 목을 넘기고 3월 하순에도 눈 내린 올해는 눈 빛깔도 참설설 끓을 거라는 예감

깨진 유리창의 법칙

깨진 유리창의 법칙                                                                 솔정수 윤성조   깨진 창을 여태 갈아 끼우지 않고 있다.  조각나고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들어앉아 있는 풍경사소하지만 치명적으로 빈자리가 눈을 찌르고첫 번째 돌이 뚫고 간 자리에는 봉합되지 않은 파열음이여전히 흥건하다.  바람이 그늘처럼 스미다 베어져 뚜욱 뚝 깨지다 만 기억들을 흘리면냄새 맡고 들어온 새가 쪼다 소화되지 못한 먹먹함을 배설하고 이따금제 외로움의 영역을 경계하는 고양이가 서늘하게 곤두선 눈빛으로 핥고 있다.  저 유리창이 깨졌을 때부터 나는 날마다 낡아져 가고삐걱대는 밤과 비둘기와 새똥, 거미줄처럼 방치된 시간들이나를 채우고 있으니새로워 지는 거라곤 내나..

돌담, 나부러지다 - 무거운 것들에 대한 가볍고 긴 이야기

돌담, 나부러지다                  - 무거운 것들에 대한 가볍고 긴 이야기                                                                                        솔정수 윤성조  중학생 시절 어머니 아버지가 처음으로 밭을 사시고는 몇 날 며칠을 닿아 올린 마늘밭 돌담은 돌보다 구멍이 더 많은데 골다공증 같은 구멍마다 바다가 출렁이다가도 감히 넘어올 생각 못 하고덜그럭거리면서도 한라산쯤은 일도 아니게 받쳐 이고서는태풍이나 큰 물난리 따위야 겨우 돌이끼로 말라붙었을 뿐백 킬로가 족히 넘어 섬만 한 내 엉덩이가 앉아도 아무렇지 않더니만, 그러니까 그게 이십몇 년 전 아직 바람이 맵던 삼월이었지 바로 위 밭 금귤 하우스를 하는 경..

신출애굽기 2

신출애굽기 2                                           솔정수 윤성조  아내들은 지팡이를 잃어버린 외로운 선지자 사내들의 습성이란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황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섬겼던 그 몹쓸 유전자가 숨어있어 언제나아내의 예언을 주머니에다 구겨 넣고는애써 도망쳐 나온 애굽 땅 쪽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곤 하지 아내는 지켜지지 않을 신탁 神托 을 내리고 사내가 귀를 후비며 방향 없는 광야로 나서는 하루 가나안 땅은 아직 멀고 먼데

허수아비

허수아비                                                              솔정수 윤성조  가슴 한편일랑 생각 없이 비워 두고 볼 일 허튼 생각도 두고두고 하고 볼 일세상이 넘어지지 않을 정도만 가끔은 삐딱하게 쳐다볼 일새 똥쯤은 이따금 맞아도 볼 일햇살에 시큼 전 가슴 비바람에 잔뜩 벌려 흠뻑 말려도 볼 일웃는 게 어색하면 제대로 인상 한 번 팍 쓰고 볼 일죄 없는 허공에다 삿대질하며 가을 주정도 부려 볼 일참새보다 시끄럽게 떠들어도 볼 일떠들다 지치면 지겨워질 때까지 침묵하고 볼 일그마저 지겨우면 앞에 했던 일들 조곤조곤 다시 하고 볼 일그렇게허수아비가 되고 볼 일, 시인보다는

신호등

신호등                                                        솔정수 윤성조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나도 어서 적당히 지혜롭게 나이 먹은 노인이 되고 싶은데 그, 어른이란 것과 적당히 지혜로운 나이라는 게도무지 언제부터를 말하는 건지는 아직 잘은 몰라도우선 지금은 빨간불 신호등에 멈춰 서기로 했다. 때가 되면 그렇게 되어 있을 게다. 요 건널목 여기에서 저기만큼녹색불에 건너가다 보면 그러다 깜빡깜빡거릴 땐 무슨 큰일인 양뛰어가다 보면

열외시인 - 비정규직

열외시인           - 비정규직                                              솔정수 윤성조  며칠째인지 빈 종이에는팔리지 않는 침묵이 쌓여 간다 야간 작업이 남긴 불면이라는 직업병은건강보험에서도 예외 항목, 애초 시간 외 수당이란 있지도 않았으니 공장 옥상이나 크레인 위에 서야 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이해도 되는데머리띠를 두르고 올라가 목쉬게 주장할 명분도, 외칠 옥상도도무지 내겐 없다  달리 계약도 해고 절차도 없어 늘 해고 대기 상태인 내 시들은오늘도 담담하게 아무도 관심갖지 않을돈이 되지 않는 행간 여백의 재고를 찍어내는데,무임금 노동이 본능이 되어버린 그래서 파업할 수도 없고 아무도 진압하려 않는 나는비정규직 중에서도 위태롭게 행복한 열외시인列外詩人이다

연전

연전                                               솔정수 윤성조  쏜 화살 주우러 과녁까지 걸어가면서수없는 화살들을 보네 활터 잔디에 촘촘히 꽂힌 햇살이라든지나뭇가지에 명중한 바람이라든지하늘을 관통하는 새소리라든지딱 제 있을 곳에 박힌 돌부리 혹은 풀꽃들이라든지세상에는 허투루 박힌 게 사람 말고는 없으니 요즘 세상에 활 써먹을 일 뭐 있겠냐겠지만화살 주으러 가는 핑계로 느릿느릿제대로 박힌 꼴들 좀 보며 살려고제대로 맞히지도 못하면서 까마득이다시 주워 와야 할 나를 날려 보낸다     * 연전 : 화살을 주워오는 것.            화살이 떨어진 자리를 확인해야 자세를 고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모기향

모기향                                               솔정수 윤성조  해탈이란 저럴 게다 짙푸른 태생도 벗고 보면다 살도록 태워야 할, 죽음보다 허연 심지의 뼈대려니 가렵도록 시끄러운 목숨에게야 멀리 날아갈 시간쯤피같이 얼마 보시해 주고누구에게도 가렵지 않을, 혹은 기억되지 않아도 상관없을흩어 사그라짐이야제 흥에 겨운 한삼 자락 승무 사위, 그야말로불립문자의 몸짓 그렇게 꺼지지 않는 한 점 붉은 어둠이 되어곤한 잠 하나 덮어 주는 소신공양 가슴까지 다 태우고서야산다는 건 죽음보다 짙은해탈이니    * 不立文字 :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

모기향

모기향                                                                                        솔정수 윤성조   해탈이란 저럴 게다,  짙푸른 태생도 벗고 보면 다 살도록 태워야할, 죽음보다 허연 心지의 뼈대려니, 가볍도록 시끄러운 목숨에게사              멀리 날아갈 시간쯤 피같이 얼마                                               보시해                                                        주고                                                             누구                       ..

다람쥐 사는 숲

다람쥐 사는 숲                                                                 솔정수 윤성조  귀 아래 낮게 뜨는 눈에는낙엽 아래 덮힌 흙냄새도 온통 하늘처럼 파랄 게다 돌멩이 그늘에 귀 기울여 침묵 같은 응달을 들어보면 땅 속으로 스미는 부엽토, 채 마르지 않은 온기가 햇살보다 부시게 성장판을 여는 소리 세상 모든 자궁은 빛을 낳으려 어두운 게다 제 배냇빛깔을 더듬던 하늘이 비로소 그늘 빛 눈을 뜨는숲 바닥에서 흔즐녘에서야 배냇버릇처럼 응달 냄새를 더듬는 다람쥐문득 일어서서 돌아보는 소리 없는 천둥            *흔줄 : 사십 세에서 사십구 세에 해당되는 나이

제비집

제비집                                                         솔정수 윤성조  계고장도, 집행통지서도 없는 철거제비들은 억울하다 모처럼 갠 날 일당벌이 외벽칠제비들 시뻘건 절규보다 자식새끼 눈망울들이 더 큰페인트공 이 씨는 새끼들이나 없기를, 눈 질끈 감고제비집에 막대질을 해야 한다 산다는 것이 흔들리는 찰나 발목을 동여매고 삐걱 사다리에 올라가려지지 않는 가슴의 금 덧칠하고 덧칠하고 덧칠하는이 씨 등 휘는 날갯짓이 비잉빙 헐린 제비집 위로 맴도는참 붉은 오후 반지하 사글셋방 눈 큰 새끼 제비들이아비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