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 / 행복한 마음으로 당신을 생각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당신을 생각합니다 폴 고갱 사람들은 모두자신의 방식대로 행복을 발견한답니다나는행복한 마음으로당신을 생각합니다 * 폴 고갱은 그림 뿐만 아니라 조각 그리고 글쓰는 작가이기도 했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24.09.15
함민복 / 빨랫집게 빨랫집게 함민복 옷을 입고 있지 않을 때내 몸을 매달아본다 몸뚱이가 되어 허공을 입고허공을 걷던 옷가지들 떨어지던 물방울의 시간입아귀 근력이 떨어진 입다무는 일이 일생인나를 물고 있는 허공 물 수 없는시간을 깨물다 철사 근육이 삭아 끊어지면툭, 그 한마디 내지르고 훑어지고 말온몸이 입인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24.09.03
최종천 / 십오 촉 십오 촉 최종천 익을 대로 익은 홍시 한 알의 밝기는오 촉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내 담장을 넘어와 바라볼 때마다침을 삼키게 하는, 그러나 남의 것이어서따 먹지 못하는 홍시는십오 촉은 될 것이다따 먹고 싶은 유혹과따 먹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마찰하고 있는 발열 상태의 필라멘트이백이십짜리 전구를 백십에 꽃아 놓은 듯이 겨울이 다 가도록 떨어지지 않는십오 촉의 긴장이 홍시를 켜 놓았다그걸 따 먹고 싶은홍시 같은 꼬마들의 얼굴도 켜져 있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24.09.03
박시교 / 꽃 또는 절벽 꽃 또는 절벽 박시교 누구나 바라잖으니그 삶이꽃이기를,더러는 눈부시게활짝 핀감탄사기를,아, 하고가슴을 때리는순간의절벽이기를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24.06.03
박시교 / 멍 멍 박시교 네 살 속또는 영혼 속깊이깊이숨어들어 하나의 목숨임을 확인하는 순간의 전율 참았던비명을 삼키는오, 아뜩한절명.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24.06.02
박시교 / 겨울 헌화가 겨울 헌화가 박시교 단 한 번도 꽃다운 삶 살아보지 못한 넋이남들 다 피었다 진 철 지난 엄동설한에마침내 온 산 들녘을 피워 내는 꽃이여당신 계신 그곳에는 피었을 것 같지 않아한두 송이 곱게 꺾어 보내드리고 싶지만먼 길에 시들면 어쩌나 눈이 부신 눈꽃이여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24.06.02
이재훈 / 남자의 일생 남자의 일생 이재훈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툭,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그림자 잦아들고온 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나비 한 마리.공중으로 날아간다. 풀잎이 몸을 연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5.10.13
윤희환 / 절창 절창 윤희환 숨 끊어질 듯 이어지는늦여름 애매미의 마지막 노래-'띄엇, 띄엇, 띄엇'자지러지는 그 울음 소리- 고운 체로도 걸려지지 않는고통의 앙금-그 질척한 갈색의 깊이- 짱짱하던 여름 하늘,자꾸만 눈치 보며 뒷걸음친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10.23
함민복 /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함민복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쉽게 만들 것은아무 것도 없다는물컹물컹한 말씀이다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조금 한 물 두 물 사리 한개끼 대개끼소금을 다시 잡으며반죽을 개고 또 개는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10.14
함민복 / 石月 석월 石 月 함민복 몸 뒤척이는 바닷가 검은 돌돌 속에 달초승 반월 보름살점 깎으며달을 닮으려스르륵스르륵경經을 외며달이 이끌어주는 그리움밀물 썰물에가슴 다 헐어내고모래가 되어도휘이-휘영청, 빛날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10.14
함민복 / 망치소리 - 악의 질서 13 망치소리 - 악의 질서 13 함민복 방 밖에서 망치소리가 들려온다망치는 자기보다 악한 물건을 두드리고 있나 보다방 안으로 들어온 망치소리도방 안의 사물들 소리를 두드린다방 안의 소리와 망치소리 머리 부분이 마모된다방 밖에서 망치소리가 점점 세게 들려올수록방 안의 소리들은 한 소리로 뭉쳐진다방 안의 소리가방 바깥의 소리와 맞선다방 안의 소리 중 망치소리 편이 되는 소리도 있다방 안에서 망치소리가 난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10.14
이문재 / 농담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10.11
김선우 / 낙화, 첫사랑 낙화, 첫사랑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10.11
이수익 / 두렵지 않다 두렵지 않다 이수익 찬 바닥에 누워서 잠드는 나의 무릎, 어깨, 팔은 바닥보다 춥지 않고 붉은 혓바닥에 갇혀 있는 침은 겨울보다 메마르지 않다 천천히 더듬으며, 하얗게 말을 이어 갈 수 있는 몸, 따뜻해! 북풍이 몰아칠 가혹한 날들, 저 무위한 바람막이 같은 쓸쓸한 추위, 더 기억해야 할 부적의 날..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10.11
장석남 / 요를 편다 요를 편다 장석남 요는 깔고 몸을 뉘는 물건 사랑을 나누는 물건 어느날 죽음을 맞는 물건 도가(道家) 풍으로 요를 타고 하늘을 날고 싶거니 매미 우는 삼복 한여름에도 요를 펴고 누워 하늘을 부른다 몸은 요를 부르는 물건 사랑은 요를 부르는 물건 죽음은 요를 부르는 물건 꽃을 펴듯 요를 편다 -시..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10.11
문정희 / 늙은 꽃 늙은 꽃 문정희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10.11
반칠환 / 구두와 고양이 구두와 고양이 반칠환 마실 나갔던 고양이가 콧등이 긁혀서 왔다 그냥 두었다 전날 밤 늦게 귀가한 내 구두코도 긁혀 있었다 정성껏 갈색 약을 발라 주었다 며칠 뒤, 고양이 콧등은 말끔히 나았다 내 구두코는 전혀 낫지 않았다 아무리 두꺼워도 죽은 가죽은 아물지 않는다 얇아도 산 가죽은 아문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9.22
반칠환 / 물결 물결 반칠환 그랬구나! 가슴의 통증이 가시고 눈앞이 환해진다 어리석고 아둔한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의 굽은 어깨와 허리가 매화 등걸처럼 휘영청 내 걸리고 가슴마다 꽃이 핀다. 내 눈의 들보와 남의 눈의 티끌마저 모두 꽃핀다. 가장 아프고, 가장 못난 곳에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 걸려 있다니 ..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9.22
반칠환 / 먹은 죄 먹은 죄 반칠환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 가까스로 허물 벗은 날개 말리던 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9.22
차주일 / 득음 득음得音 차주일 일평생 바람을 꼬아 다다른 허공에 대꽃 하나 묶는다 대꽃과 뿌리 사이 바람의 현 팽팽하다 달빛이 알몸으로 내려와 바람소리를 걸쳐 입고 날아간다. 비천飛天이 도움닫기한 자리에 돋은 죽순 아무 소리 없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8.06
함민복 / 폐타이어2 폐타이어2 함민복 길 건너편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린다 빈 종이 상자 실은 리어카가 지나간다 찰강찰강 웃자란 햇살이 경쾌하게 깎인다 내리막길 과속 막으려 리어카 뒤에 매단 타이어 끌리는 소리 부-욱 부-욱 바리톤이다 구르는 바퀴를 굴러 본 바퀴가 붙잡는 봄 어미 가슴팍 또 한 겹 얇아진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6.21
함민복 / 폐타이어 폐타이어 함민복 구르기 위해 태어난 타이어 급히 굽은 길가에 박혀 있다 아직 가 보고 싶은 길 더 있어 길 벗어나기도 하는 바퀴들 이탁 막아주려 몸 속 탱탱히 품었던 공기 바람에 풀고 움직이지 않는 길의 바퀴가 되어 움직이는 것들의 바퀴인 길은 달빛의 바퀴라고 길에 닳아버린 살거죽 모여 모여..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6.21
함민복 / 길의 길 길의 길 함민복 길 위에 길이 가득 고여 있다 지나간 사람들이 놓고 간 길들 그 길에 젖어 또 한 사람 지나간다 길도 길을 간다 제자리걸음으로 제 몸길을 통해 더 넓고 탄탄한 길로 길이 아니었던 시절로 가다가 문득 터널 귓바퀴 세우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의 소리 듣는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6.21
함민복 / 보따리 보따리 함민복 한 시간 걸려 버스가 읍내에 도착하면 저것 내 것! 저것 내 것! 보따리 들고 내리는 할머니들보다 좀더 젊은 할머니들 보따리를 향해 버스 문을 후벼판다 흰 허리로 짐보따리를 내리는 몸집보다 큰 익모초 단을 내리는 할머니들의 쪼그락 손 저 작은 보자기 수만 번 꾸렸다 폈다 했을 저 ..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6.21
함민복 / 부부 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6.21
함민복 / 폐가 폐가 함민복 세월은 문짝을 싫어하는 게지 문짝을 먼저 떼어갔네 세월은 문짝을 좋아하는 게지 세월의 문짝 저 집에 살던 사람들 지고 피던 꽃 서럽다고 혼자 핀 복사꽃 이마로 지붕을 짚고 손으로 지붕처럼 기운 세월을 짚고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6.21
서정춘 / 빨랫줄 빨랫줄 서정춘 그것은,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 줄 같다 그것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망..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6.17
마경덕 / 돼지 머리 삶기 돼지 머리 삶기 마경덕 고사상에 올라 간 돼지머리. 전족 같은 발로 비대한 몸뚱이를 끌고다닌 식탐이 마침표를 찍었다. 생전에 욕심 많던 돼지, 잔뜩 지폐를 물고 있다. 콧구멍, 귓구멍에도 시퍼런 지폐를 받아 꽂는다. 제 목숨을 내놓고 받는 절이다. 허허, 죽은 돼지가 웃는다. 웃다가 목을 바친 웃음..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5.30
함민복 / 뻘에 말뚝 박는 법 뻘에 말뚝 박는 법 함민복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긴 정치망 말이나 김 말도 짧은 새우 그늘 말이나 큰 말 잡아줄 써개말도 말뚝을 잡고 손으로 또는 발로 좌우로 또는 앞뒤로 흔들어야 한다 힘으로 내리 박는 것이 아니라 흔들다보면 뻘이 물러지고 물기에 젖어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5.29
이성복 /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이성복 물이 밀려온다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뒤집어놓는다 물새들은 어째서 같은 방향만 바라볼까 죽은 물새를 추억하는 자세가 저런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서럽지도 않은 것들이 일제히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201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