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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157

반칠환 -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

김선우 - 단단한 고요

마른 잎사귀에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 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채머리 떠는 소리 멧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강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

조태일 - 꽃들, 바람을 가지고 논다

꽃들, 줄기에 꼼작 못하게 매달렸어도 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 아빠꽃 엄마꽃 형꽃 누나꽃 따라 아기꽃 동생꽃 쌍둥이꽃 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 바다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놀던 바람도 산속에서 바윗덩이를 토닥이며 놀던 바람도 공중에서 날짐승을 날게 하던 바람도 꽃들 앞에선 오금을 쓰..

박현수 - 1만 5천 마리의 하루살이

오늘도 하루살이의 전 생애를 탕진했다 오늘 저녁 어디선가 나 대신 하루살이가 죽어 가리라 목숨이란 게 그의 전 생애를 덧대고 기운 것일 뿐 나의 한 달은 서른 마리 하루살이의 전 생애 마흔이 넘은 나는 1만 5천 하루살이 목숨의 어설픈 짜집기라서 어느 하루도 그의 전 생애와 맞바꿀 만한 날은 없..

박정애 - 진주를 모른다

맛있는 과일은 새들이 먼저 알고 애벌레도 아는 가시 속 밤톨을 밤나무는 첨부터 알았을까 상처를 안고 숨어 사는 진주조개 몸속에 말갛게 빛나는 그것이 제 이름인 줄 알았을까 제 몸이 보석인 줄도 모르면서 보름달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가슴 환히 열어 보이고 싶어 진주 남강 물..

유홍준 - 해변의 발자국

얼마나 무거운 남자가 지나갔는지 발자국이, 항문처럼 깊다 모래 괄약근이 발자국을 죄고 있다 모래 위의 발자국이 똥구멍처럼, 오므려져 있다 바다가 긴 혓바닥을 내밀고 그 남자의 괄약근을 핥는다 누가 바닥에 갈매기 문양이 새겨진 신발을 신고 지나갔을까 나는 익사자의 운동화를 툭 걷어찬다 ..

석정호 - 간장게장을 먹지 못했다

간장 게장을 먹다가 철갑 속의 달콤한 살점과의 입맞춤에 안달 내다가, 문득 그 식탐이 구차했다 언젠가 탁구를 배우러 간 적이 있다 구력이 오랜 회원들이 곁눈에 들어오고 하루 이틀 후, 보니 그들은 몇 백 년 동안 쌓은 성벽이었다 나의 탁구공는 성 밖에서 구르는 마른 쇠똥, 화려한 운동복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