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솔정수 윤성조
누가 불법을 저지른 적 없는 가을을
강제 철거하려는가
수은주처럼 줄어드는 공터 풀밭 구석
굴삭기, 21톤짜리 침묵이 읽어 내려가는 철거 최후통첩문
쓰르륵쓰르륵 찌르르륵찌르르륵
쓰러질 듯 쓰려도, 찌를 듯이 시려도 울음이 전부인 목숨들의
풀잎 위, 더는 내려갈 데 없는 밤샘 농성은
6등성 별빛보다도 가마아득한데
벌레의 외침이 벌레만도 못하게 될 때
가을은 이윽고 무너져 내리고야 말지니
하, 바람이 수상하다
가로등은 회색 깃을 바짝 올려 세우고
굴삭기 삽 위 달빛이 철거 용역 쇠 파이프처럼 번뜩이는 밤
불법을 저지른 적 없는 이 공터 풀밭의 가을을 누가
강제 철거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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