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시인 4
- 사기 모의
솔정수 윤성조
시 속의 고독과 아픔과 사랑을 믿는 사람이야말로
로맨티시스트다
알 수 없는 싯구절은 무슨 심오한 의미가 숨어있을 거라 믿는 사람이야말로
철학자다
시인이 쓴 시는 다 시라 믿는 사람이야말로
시인이다
서점이든 도서관에서든 이름 모를 시인의 시집에 선뜻 손을 뻗는 사람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스트다
집사람도 안 읽어 주는 내 시를 기꺼이 읽는 사람이야말로
휴머니스트다
세상에 그런
로맨티시스트와 철학자와 시인과 포스트모더니스트와 휴머니스트들이 아직은
많아서 집사람도 덮는 내 시를 누군가 읽어 주리라 믿는 나야말로
몽상가다
로맨티시스트고 철학가이며 시인이고 포스트모더니스트이자 휴머니스트인 독자를
한 명이라도 가진 몽상가야말로
지독한 사기꾼이다
완전 범죄를 꿈꾸는 나의 시어들은 오늘도
로맨티시스트와 철학자와 시인과 포스트모더니스트와 휴머니스트들에게
달콤한 사기를 모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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