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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짜리 귀로

만 원짜리 귀로                                                    솔정수 윤성조  마트 가는 아내 부탁으로 몇 개 안 되는 빨래 개다가집사람 바지 주머니 안 접힌 채 잘 마를 만 원짜리 한 장 얼른 빨래 갠 몫으로 챙겨 목욕탕 안개 사우나실에서죄만큼 코끝 뜨거운 호흡 삼키며 귀 벌건 참회를 흠뻑 흘리고는갠지스강보다 경건하게 냉탕에 몸을 담가 참회마저 다 씻어낸8천 원어치 증거 인멸 후 남은 2천 원으로 탈의실 양심 냉장고에서음료수 하나 꺼내 마시고 몸이나 양심이나 가뿐하게죄 없이 돌아오는 만 원 어치 노을녘 (2021. 10. 21.)

이유 6

이유 6 솔정수 윤성조  *모래 위에 지은 사막이 허물어 지지 않는 건사막의 잔등을 차분히 덮어 어루만지듯 걷는,넓고 평평하고 부드러운 낙타 발바닥 때문이지만일 낙타 발바닥이 사람의 그것이었다면깊이 발자국을 찍어 남기려는 사막은여지없이 패여 허물어지고 말았을 터 그래서 사막도 기꺼이 제 몸의 모든모서리와 직선과 날을 바람에 깎아 날려버리고둥글게 둥글게 낙타 발바닥을 쓰다듬는 거지   * 신약성서 마태복음 7장 26~27절   (2024. 10. 19.)

이유 5

이유 5                                                     솔정수 윤성조  모니터에 "노벨을 휩쓴 시"라는 기사 제목이 보여이번 노벨 문학상은 시가 아니라 소설인데 싶어더 가까이에서 보니 "노벨을 휩쓴 AI"였네노안에 오래된 난시까지 겹쳐서"AI"가 "시"로 보이다니, 그렇지 않아도눈 수술 고민 중이었는데,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시"로 보일 게 많지 않겠나시인은 반드시 난시에 노안이어야 한다 (2024. 10. 15.)

유쾌한 위로

유쾌한 위로                                                                              솔정수 윤성조   내 시집을 가진 몇 안 되는 지인 중 제일 친한 동생 전화가 왔는데 - 소식 들었습니다. 안 됐지만 힘내세요, 형뭔 소린가 했더니만 -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받는데요, 글쎄   당연히 형이 받을 줄 알았는데   형 상 받으면 경매에 내놓으려고 형 시집에 사인까지 받은 건데 - 하하! 그러게 말야! 또 1년 기다려야 하나?   근데 스웨덴 한림원에 항의 전화는 해 봤냐? - 스웨덴 말로 "여보세요"가 뭔지 몰라서 관뒀어요 - 쓰린 속엔 밥이 최고지, 언제 노벨 밥상이라도 먹으러 가자

달빛 냄새

달빛 냄새                                                                            솔정수 윤성조   분명 그는 귀 맑은 시인이었어, 표정과 목소리가 딱 시詩였으니 여수 가는 밤 배에서 만나 말동무가 된 눈먼 노인객실에선 들을 게 없어 심심하다고 해서 같이 배 안을 두루 돌아다녔지지팡이는 길을 더듬는 게 아닐 앞으로 놓일 발자국의가장 좋은 자리를 미리 찾아놓는 거라며 웃더군바닥은 지팡이 더 훤하니 걱정 말라며내가 넘어질까 손잡는 거라고자기는 어둠 따위는 아예 볼 일 없어 좋다고 표정만큼 해맑은 귀를 세워 바다 쪽으로 기울이더니파도 소리에서 달빛 냄새가 난다나분명 오렌지 빛깔일 거라고눈 감고 한 60년쯤 살면 냄새와 빛깔도 소리로 다 만져진다고 ..

수백만 년 동안

수백만 년 동안                                               솔정수 윤성조  비 젖은 벽돌 길을 내려오다 미끈대면서허리가 흔들리는 찰나 (진화론을 믿지도 않으면서)수백만 년 전 뒷다리에 힘을 주고 가슴을 펴며더 멀리 보려 땅에서 앞발을 들어 올렸을 것이라는최초 직립의 순간을 원망하고 있었네, 그러고 보면 진화로도 단련되지 못한 수백만 년 묵은 직립의 허리뼈는가마아득한 사족보행 시절을 본능처럼 그리워하며 되돌아보려내내 몸을 세우고 있었던 거야   * 필자는 창조를 믿는 사람으로 다만 시적 유희로써 진화론을 차용하는 거임

꼼수

꼼수                                                       솔정수 윤성조  몇 안 되는 독자 중 한 분이 물으시기를 다른 분들은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이름을보통 제목과 같은 크기로 진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왜 선생님은 이름 크기를 더 작게 하시나요?글쓴이보다 시에 집중하게 함인가요? 아뇨, 전혀원래 사람이란 작은 것에매달리는 편이거든요제 이름 광고하는 겁니다

사막의 꿈

사막의 꿈 솔정수 윤성조 몇천 년, 아니 몇만 년을 도저히 멸망해 본 적 없는 영토가 있다이념도 법도 군주도 없으니 도무지 도발하는 적도 없어멸망하고 싶어도 멸망 못 하는 제국이 있다모래 위에 자기를 세워 무너지기를 예언처럼 목타게 기다리다기다림 만큼 견고해지고 마는, 멸망이 열망인 불멸의 사상누각 왕국이 있다 그 나라에서는 태양처럼 사그라질 줄 모르는 태평성대에 지쳐모래알보다 많은 적막들이 멸망으로 망명을 시도하다가 끝내멸망을 찾지 못하고 주저앉아 사구가 되어 뜨거운 고요로 투덜대며제 멸망의 가려운 꿈을 바람에다 비비면서 나지막이 늙어가는 것이일상이고 역사면서 번영이자 내란이고 전쟁이며 평화다

날 위의 민달팽이

날 위의 민달팽이                                                   솔정수 윤성조  그늘도 베어져 나뒹구는, 서늘한 낫 위를민달팽이가 넘고 있네 베인다는 건 서슬에 틈을 내민다는 것 그래서민달팽이는 지금 온몸으로 끈끈한 입술이 되어틈 없이 서슬의 차가운 입술을 포개는 거지 입술의 점액질 온기가 서슬을 덮어날 선 침묵을 둥글게 끈적하게 삼키는 거지 * 달팽이는 각 세포마다 무게를 분산시켜 칼날에 닫는 몸부분을 파도처럼 출렁거리게 하여서 몸을 이동하기 때문에 충격(베는 것)도 흡수해 버려 날카로운 칼날 위로도 몸 이 잘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으며, 또한 몸메서 점액질 성분이 나와 마찰을 최소화하 면서 칼날을 감싸는 역할을 하기때문에 베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2008..

돌담 신전

돌담 신전                                                                                솔정수 윤성조  바닷가에 돌담을 쌓은 사람은 신이 보내신 선지자다, 틀림없이그의 손금과 굳은살과 상처와 땟자국은 창세기의 한 페이지다 바다와 섬과 하늘과 노을과 바람과 사람과 바위와 그 완전한 풍경에돌담을 놓아 완성을 더 완전케 하시는 신의 씨실과 날실 혹은돌담 구멍만이 견뎌낼 바람을 창조하여 돌담의 이유를 만드신 신의 정밀한 계측의 톱니바퀴, 그것을 알아채고 바람의 씨실과구멍의 날실로 돌담을 짜서 세운 사람이야말로 틀림없이 신께서쌓아 올리신 사람이다, 신의 지문을 돌에 새기도록 허락된 사람이다 돌담 구멍 지성소에는 신의 지문에 기꺼이 머리를 조아리는 푸..

모래시계

모래시계                                           솔정수 윤성조  너무 건조해서 사막에서는 이따금죽을 때 모습 그대로 말라붙은 자연 미라가 발견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며목마르게 작열하는 기억 속, 발자국 한 줄 따라가다 보면어느 사구 그늘에 누워 미라가 됐을지도 모를 내 그리움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하게 될까,허튼 생각을 하네 습식 사우나실에서 10분짜리 모래시계 속핑크 사막의 갈증을 뒤집으면서

폴 고갱 / 행복한 마음으로 당신을 생각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당신을 생각합니다                                                           폴 고갱  사람들은 모두자신의 방식대로 행복을 발견한답니다나는행복한 마음으로당신을 생각합니다   * 폴 고갱은 그림 뿐만 아니라 조각 그리고 글쓰는 작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