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창세기
솔정수 윤성조
차마 경건하게 어리석어져라
산마루에다 방주를 지은 노아 따라
구름 한 점 없던 날에 예보 없는 홍수를 피해 산길 오르던,
이 세상 지금 살아 있는 모든 현명한 種의 어리석디어리석었던
어미 아비들 행렬이 그러했으니
어리석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현명한 삶의 본능이냐
무모하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정밀한 신앙의 계측이냐
아직 비구름 아니 보이는 날에
달콤하게 축축한 흙냄새 다시 돌아보지 않고
화단 넘어 콘크리트 광야를 가로질러 돌벽을 타고
어느 높은 곳, 본 적 없는 방주 찾아 없는 길 더듬어 만드는
개미들, 목마름처럼 긴긴
어리석디어리석은 어미 아비들의 질긴 家系圖의 행렬이
쉬이 어리석어 본 적, 감히 무모해 본 적 자랑같이 없는
세상 한 여백에
몸과 몸이 붓이 되어 먹물이 되어 오체투지로 이어 쓰는
산 위에다 배를 지었던 우리 어리석었던 아비 노아의
창세기篇 예언 한 획
- 차마 경건하게 어리석어져라,
더듬이질만큼 우렁차게 어리석어져라, 하여
마른 비 냄새를 맡는 어리석은 목마름처럼
현명하게 어리석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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