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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황인숙 - 집1

솔정수 윤성조 2009. 11. 15. 19:39

                       집1

 

                                            황인숙

 

 

이사 온 날

하얀 벽지로 꾸민 팽팽한 방

천장도 벽도 그늘 한 점 없이 환했다

한 달이 지나 한쪽 벽

천장에서 방바닥까지 

길게 금 하나 생겼지

또 한 달이 지나니

창틀 모서리에서 금 하나 또 기어나와

신발장 뒤로 숨어들었다

벌어진 틈으로 시멘트가

바싹 마른 맨살을 드러냈다

뭐, 이쯤이야

 

날이면 날마다 벽과 천장이

울룩불룩 울퉁불퉁

벽지 안쪽 사정을 조잘조잘 실토하고

그래도 뭐, 나는 태평했는데     

 

온종일 비 쏟아진 뒤

천장에 갈색 점 하나

멍처럼 번진다

둘, 셋, 넷, 다섯

수심처럼 번진다

 

벽지 너머에서

커다란 비밀이 발꿈치를 들고

젖은 발을 딛고 있는 듯

다섯 개의 둥그스름한 얼룩이여

 

조마조마 지켜보는데

그대로 뚝 멈춰 있다

뭐, 뭐, 저쯤이야

 

비가 전혀 새지 않는 집은

살아 있는 집이라 할 수 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