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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함축 속의 드러냄과 감춤

[스크랩] 두줄시의 맥을 찾아(3)

솔정수 윤성조 2009. 5. 22. 21:07
 

하로동선(夏爐冬扇)

함선영



은행나무 부채 떨구네


겨울은 너무 춥다고


   이 세상에는 필요한 것보다 필요 없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삼라만상이 다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태어나 지금 그 자리에 있을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내게 꼭 필요로 하는 것은 극히 소수일밖에 없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그만큼 욕심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사는 날까지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면서 나 자신보다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그 무엇,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그 무엇, 내가 평생 추구하는 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그 무엇, 바로 '그 무엇'만이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외 다른 그 무엇들은 다 버려야 할 것입니다.

   함선영군의 '하로동선(夏爐冬扇)'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에 대한 문제를 사물을 형상화하여 제기한 시입니다.
   은행잎은 노란 부채를 닮았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온 세상을 노랗게 꾸미는 은행잎이 겨울의 문턱에 떨어집니다.
   부채는 여름에 필요한 물건입니다. 겨울에 부채를 필요로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던 잎(부채)들은 추운 겨울을 위해서는 아무리 아쉬워도 지워야(버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자신을 아름답고 시원하게 장식했던,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잎을 미련없이 떨구는 것입니다.
   잎이 다 진 은행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겨울을 보냅니다. 은행나무에 있어서 잎은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옷이 아닙니다. 겨울을 더 춥게 만드는 부채일 뿐입니다. 한겨울에 노란 잎이 무성한 은행나무가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겨울바람에 우수수 떠는 잎은 나목의 앙상함보다 더 안타까움을 주지 않을까요.
   여름에 햇볕(爐)을 가려주던 잎은 겨울에는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扇)에 불과합니다.
   얻을 것을 얻지 못해서 당하는 아픔보다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해 당하는 아픔이 더 큽니다.
   얻으려 하는 일은 힘겹고 어렵지만, 가진 것을 버리는 일처럼 쉬운 것은 없습니다.
   꼭 필요한 것을 얻으려다 못 얻으면 그에 상응하는 차선책이 있지만,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다가 어떤 문제에 다다르면 그에 상응하는 차선책도 없습니다.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립시다. 은행나무가 잎을 버리고도 씩씩하게 겨울을 나듯이 말입니다.

   한눈에 보이는 두 줄로써 제목과 잘 어울리는 내용에 관념의 나열이 아닌 구체적 사물을 통한 형상화는 훌륭한 두줄시의 맥입니다. 두줄시는 단순한 사물의 묘사가 아닙니다. 한 줄로 써도 될 것을 두 줄로 나누는 것이나 여러 줄로 쓸 것을 두 줄로 줄이는 것이 두줄시가 아닙니다. 시적 형상화가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뚜렷한 메시지가 있는 두 줄로 된 시가 참 두줄시입니다. 고등학교 학생인 함선영군의 '하로동선'은 그런 의미에서 두줄시의 맥을 잘 드러낸 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두줄시
글쓴이 : 최병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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