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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 4장 고명

천장天葬을 유언하다

솔정수 윤성조 2014. 11. 2. 01:41

천장天葬을 유언하다

 

                                                          솔정수 윤성조

 

 

언젠가 내가 기분 좋게 죽으면

햇살 좋은 날 잡아 그늘 하나 없는 산등성이 풀밭에

실오라기 하나 입히지 말고 눕혀 주기를,

 

그리하여 혹 아직 식지 않은 내 영혼이 거기에 남아 있다면 나른하게 증발하면서

햇살에 찡그리는 기분 좋은 눈 간지러움을 몸 밖에서의 첫 행복으로 기억하기를,

그러다 그 햇살과 바람의 손길이 슬그머니 지겨워질 즈음이면

배고픈 새들이 와서 -내가 참 좋아하는 까마귀들이라면 더 좋으리-

시가 된 적 없는 내 살진 삶을 퇴고해 주기를,

 

시를 쓰며 살면서도 제대로 한 번 해보지 못했던 퇴고를

맘껏 부리 가는 대로 대신 해주기를,

그래서 더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순백의 백골 구멍과 갈비뼈 사이의 투명한 바람이

내 시어와 행간이 되기를,

 

하, 이윽고 내 시가 허옇게 완성되면

그 시의 모든 자음과 모음들을 백지 닮은 너럭바위 위에다 놓아 빻고는

바람에 저절로 페이지가 넘겨지게 되기를,

 

그마저도 다시는

읽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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