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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짧은 시 긴 울림

고은 시인 짧은 시 모음2

솔정수 윤성조 2011. 12. 13. 18:23

旅愁 (짧은 시 시리즈) 중

 

3

새벽에 쫓아나가 빈 거리 다 찾아도

그리운 건 문이 되어 닫혀 있어라

 

 

45

돌멩이 하나 던져서

어둠에 맞는 소리

 

밤길 혼자 가다가 둘이 되다

 

 

52

저 불빛 하나!

눈 감았다가

다시 눈 떠서

함께 잠을 이루지 못하네

 

 

59

하늘만큼 바쁜 데 어디 있겠나

바람

구름 논 우여우여

그러다가도

또 얼마나 바쁜가 뼈저린 푸른 하늘

 

126

저 소경의 어둠 속에 들어가서

이 세상을 그리워하여라

 

그대 꼭 그리워할 테면……

 

 

158

옷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작은 시편 "순간의 꽃" 중에서

 

*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겨울 잔설 경건하여라

낙엽송들

빈 몸으로

쭈뼛

쭈뼛 서서

어떤 말에도 거짓이 없다

 

이런 데를 감히 내가 지나가고 있다

 

 

 

 

*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내려오는

시냇물

부지런하다

그보다 물 거슬러

올라가는

쉬리 부지런하다

게리 부지런하다

 

 

 

 

*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 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의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동굴 밖은 우짖는 비바람 소리

동굴 안은

천장 가득히 박쥐들의 묵언이로다

 

 

 

 

*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둣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

옷깃 여며라

광주 이천 불구덩이 가마 속

그릇 하나 익어간다

 

 

 

 

*

부들 끝에 앉은 새끼 잠자리

온 세상이 삥 둘러섰네

 

 

 

 

*

뭐니 뭐니 해도

호수는

누구와 헤어진 뒤

거기 있더라

 

 

 

 

*

소나기 맞는 민들레

입 오무리고 견디는구나

 

굳세어라 금순아

 

 

 

 

*

푸른 하늘 아래

뱃속의 아기도 있다

 

 

 

 

*

초신성은 멸망으로만 빛납니다

멸망으로만

새로운 별입니다

나는 누구누구였던가

아득하여라

아득하여라

 

 

 

 

*

초등학교 유리창마다

석양이 빛나고 있다

 

그 유리창 하나하나가 실컷 신들이었다

 

 

 

 

*

수우족에게는 작별인사가 없다

내일 달이 다시 뜬다

보름달 다음

열엿샛달이

 

 

 

 

*

어찌 꽃 한 송이만 있겠는가

저쪽

마른 강바닥에도 아랑곳하게나

볼품없음이

그대 임이겠네

 

 

 

 

*

아서

아서

칼집이 칼을 만류하느라

하룻밤 세웠다

칼집과 칼집 속의 칼 고요!

 

 

 

 

*

무슨 질풍노도 무슨 잔치를 꿈꾸는가

걸려 있는 징

 

 

 

 

*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들녘을

물끄러미 보다

한평생 일하고 나서 묻힌

할아버지의 무덤

물끄러미 보다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뺐다

 

 

 

 

*

어쩌자고 이렇게 큰 하늘인가

나는 달랑 혼자인데

 

 

 

 

*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천 개의 물방울

 

비가 괜히 온 게 아니었다

 

 

 

 

*

곰공이 생각건대

매순간 나는 묻혀버렸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무덤이다

 

그런 것을 여기 나 있다고 뻐겨댔으니

 

 

 

 

*

비 맞는 풀 춤추고

비 맞는 돌 잠잔다

 

 

 

 

*

첫 빗방울

툭 떨어지며 후박나무 잎사귀

깨어난다

이어서

이 잎사귀도

저 잎사귀도

 

 

 

 

*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