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愁 (짧은 시 시리즈) 중
3
새벽에 쫓아나가 빈 거리 다 찾아도
그리운 건 문이 되어 닫혀 있어라
45
돌멩이 하나 던져서
어둠에 맞는 소리
밤길 혼자 가다가 둘이 되다
52
저 불빛 하나!
눈 감았다가
다시 눈 떠서
함께 잠을 이루지 못하네
59
하늘만큼 바쁜 데 어디 있겠나
비
바람
구름 논 우여우여
그러다가도
또 얼마나 바쁜가 뼈저린 푸른 하늘
126
저 소경의 어둠 속에 들어가서
이 세상을 그리워하여라
그대 꼭 그리워할 테면……
158
옷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작은 시편 "순간의 꽃" 중에서
*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겨울 잔설 경건하여라
낙엽송들
빈 몸으로
쭈뼛
쭈뼛 서서
어떤 말에도 거짓이 없다
이런 데를 감히 내가 지나가고 있다
*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내려오는
시냇물
부지런하다
그보다 물 거슬러
올라가는
쉬리 부지런하다
게리 부지런하다
*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 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의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동굴 밖은 우짖는 비바람 소리
동굴 안은
천장 가득히 박쥐들의 묵언이로다
*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둣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
옷깃 여며라
광주 이천 불구덩이 가마 속
그릇 하나 익어간다
*
부들 끝에 앉은 새끼 잠자리
온 세상이 삥 둘러섰네
*
뭐니 뭐니 해도
호수는
누구와 헤어진 뒤
거기 있더라
*
소나기 맞는 민들레
입 오무리고 견디는구나
굳세어라 금순아
*
푸른 하늘 아래
뱃속의 아기도 있다
*
초신성은 멸망으로만 빛납니다
멸망으로만
새로운 별입니다
나는 누구누구였던가
아득하여라
아득하여라
*
초등학교 유리창마다
석양이 빛나고 있다
그 유리창 하나하나가 실컷 신들이었다
*
수우족에게는 작별인사가 없다
내일 달이 다시 뜬다
보름달 다음
열엿샛달이
*
어찌 꽃 한 송이만 있겠는가
저쪽
마른 강바닥에도 아랑곳하게나
볼품없음이
그대 임이겠네
*
아서
아서
칼집이 칼을 만류하느라
하룻밤 세웠다
칼집과 칼집 속의 칼 고요!
*
무슨 질풍노도 무슨 잔치를 꿈꾸는가
걸려 있는 징
*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들녘을
물끄러미 보다
한평생 일하고 나서 묻힌
할아버지의 무덤
물끄러미 보다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뺐다
*
어쩌자고 이렇게 큰 하늘인가
나는 달랑 혼자인데
*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천 개의 물방울
비가 괜히 온 게 아니었다
*
곰공이 생각건대
매순간 나는 묻혀버렸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무덤이다
그런 것을 여기 나 있다고 뻐겨댔으니
*
비 맞는 풀 춤추고
비 맞는 돌 잠잔다
*
첫 빗방울
툭 떨어지며 후박나무 잎사귀
깨어난다
이어서
이 잎사귀도
저 잎사귀도
*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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