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조금은 긴 쉼표
사막의 꿈
솔정수 윤성조
2024. 10. 10. 14:27
사막의 꿈
솔정수 윤성조
몇천 년, 아니 몇만 년을 도저히 멸망해 본 적 없는 영토가 있다
이념도 법도 군주도 없으니 도무지 도발하는 적도 없어
멸망하고 싶어도 멸망 못 하는 제국이 있다
모래 위에 자기를 세워 무너지기를 예언처럼 목타게 기다리다
기다림 만큼 견고해지고 마는,
멸망이 열망인 불멸의 사상누각 왕국이 있다
그 나라에서는 태양처럼 사그라질 줄 모르는 태평성대에 지쳐
모래알보다 많은 적막들이 멸망으로 망명을 시도하다가 끝내
멸망을 찾지 못하고 주저앉아 사구가 되어 뜨거운 고요로 투덜대며
제 멸망의 가려운 꿈을 바람에다 비비면서 나지막이 늙어가는 것이
일상이고 역사면서 번영이자 내란이고 전쟁이며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