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조금은 긴 쉼표
함초 (산문시 ver.)
솔정수 윤성조
2024. 5. 22. 10:52
함초
솔정수 윤성조
삼십여 년 전, 영등포역 뒤쪽에 아직 아파트 단지 대신 슬레이트 지붕에 군데군데 방수용 천막 덮어 얹은 고만고만한 집들이 더덕더덕 있던 시절에 창문 낮은 방에서 같이 자취를 했던, 제봉공장 미싱공 친구 녀석이 IMF때 사장은 임금 채납한 채 야반도주해 버리고 마음 다 줬던 여자도 떠나 버려, 다시는 서울 쪽은 돌아보지도 않겠다며 해남 사촌 형네 염전에 내려와 염부가 되었다는 소식을 이태 전에야 알음알이로 듣고는 해남에 가서 만호 염전에 들렀는데
그새 아이가 세 명이 된 내 안부가 싱겁다며 30킬로짜리 천일염 세 포대를 막무가내 내 차에다 실어 버리고는 이제는 먼 나라에서 소금맛 좋아할 만한 여자 찾기로 했다며, 그런 여자 데리고 제주도 찾아가면 흑돼지 소금구이나 실컷 사달라고 허허 웃는 그 녀석의 말려도 말려도 간수가 채 빠지지 않는 세월이 건조기 햇살처럼 새까맣게 달라붙은 어깨 위에
하얗다 못해 파르스름한 함초가 눈맛 짜게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