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정수 윤성조 2011. 12. 13. 17:21

 

그래

너 한 마리 새가 되어라

 

하늘 날아가다

네 눈에 뜨이거든

 

나려와 마른 가지에

잠시 쉬어서 가라

 

천년 고목은

학같이 서 있으리니

 

 

 

어떤 유화

 

오래 된 유화가 갈라져

깔렸던 색채가 솟아오른다

 

지워 버린

지워 버린 그 그림의

 

 

 

어떤 오후

 

오래 쌓인 헌 신문지를

빈 맥주병들과 같이 팔아 버리다

 

주먹 같은 활자로 가로지른 기사도

5단 내리뽑은 사건도-

 

나는 지금 뜰에서

꽃이 피는 것을 바라다보고 있다

 

 

 

달무리 지면

 

달무리 지면

이튿날 아침에 비 온다더니

그 말이 맞아서 비가 왔네

 

눈 오는 꿈을 꾸면

이듬해 봄에는 오신다더니

그 말은 안 맞고 꽃이 지네

 

 

 

전해 들은 이야기

 

잔주름져가는 눈매를

그녀가 그렇게 슬퍼하는 것은

이제는 사람의 눈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는 그런 아쉬움이 아니오

중년부인이란 말이 서운하여서도 아니다

그녀를 그렇게 슬프게 하는 것은

세월도 어찌하지 못하는, 언제나 젊은 한 여인이

남편의 가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다림1

 

밤마다 눈이

나려서 쌓이지요

 

바람이 지나고는

스친 분도 없지요

 

봄이면 봄눈 슬듯

슬고야 말 터이니

 

자욱을 내달라고

발자욱을 기다려요

 

 

 

후회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

 

세워 놓고 문 닫기 어렵다거늘

 

나비같이 비에 젖어 찾아온 그를

 

잘 가라 한 마디로 보내었느니

 

 

 

축복

 

나무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나무가 되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새들이 하늘을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새들이 되어 나란히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편지

 

오늘도 강물에

띄웠어요

 

쓰기는 했건만

부칠 곳 없어

 

흐르는 물 위에

던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