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복효근 /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솔정수 윤성조 2009. 11. 30. 20:05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강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제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