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이선영 / 엎질러진 물
솔정수 윤성조
2009. 11. 23. 09:36
엎질러진 물
이선영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제자리에 담아 넣을 수 없다 엎어진 과일바구니나 쏟아진 책가방이 아닌
방바닥에 엎지른 물을 급한 걸레질로 닦아냈지만 침대 밑이나 장롱 밑 아니면 또 다른 그 어딘가로 물줄기가
슬그머니 흘러들었을지 모른다 흘러들어서 장판이나 목제의 생장점에 아름답지 못한 곰팡이꽃을 피우고 있는지 모른다
무엇이든 엎지르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엎지르고, 놀라, 뒤늦게 치우는 데 버릇 들여 번번이
삶의 방바닥에 엎질러진, 남편도 아이도 시도 그 물바가지를 엎지른 나 자신까지도
어느 우발의 밑바닥을 흘러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