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정수 윤성조 2009. 5. 22. 21:15
두줄시의 대상

  시의 대상이란, 우선 시 속의 화자가 바라보는 구체적 사물이나 말을 건네는 청자를 가리킨다. 또한 시 전체의 소개나 제재가 되는 사물 및 관념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다양한 삶의 모습과 특정한 현실에 처한 화자의 심리적 상황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1) 자연적 대상

       아뿔사. 어느 가인이 잃어 버리셨는가!
       저리 고운 속눈썹 한쪽.
                       -고중영의 '상현달'

     

      이 시의 대상은 '상현달'이라는 자연이다. 작은 꽃이나 미물들에서부터 산, 다바, 하늘, 우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연물들은 인간의 삶의 원천이요 배경으로서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 시에서 자아는 상현달을 우리 인간의 삶과 관련짓고 있다.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잃어버린 '고운 속눈썹 한쪽'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 인간의 아름다움으로 치환하여 서정적 감동을 일르킨다

    .

       날마다 그만 그만 어림쟁이 눈 속이고
       오늘은 이만 저만 담을 안은 담쟁이
                      -최병두의 '담쟁이'

     

      이 두줄시 또한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줄기를 뻗어 어느 날인가 보니 온 담을 뒤덮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눈 앞의 일에 여념이 없는 우리 사람들에게 조그만 파문을 던지는 시라 할 것이다.
      유구한 자연의 모습과 변함없는 질서는 인간의 짧고 덧없는 삶과 대비되어 진정한 삶의 의미를 표상해 준다. 다음 두줄시와 같이 현대에 이르러 자연이 문명화된 사회와 대비되어 순수한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소변기 플라스틱 그물을 감돌다가 끝내 제 줄을 못 올린 거미
       팔자걸음이 멈춘 그물눈 사이 지린 향을 지우는 소독 내음새
                       -최병두의 '생명 2' -소독은 바로 분향이었다.

     

      소변기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못하고 살다가 화장실 소독 때문에 죽어간 '거미'는 문명에 희생되는 자연의 한 단면이 아닌가.

  2) 인간적 대상

      시에서 자연적 대상이 인간과의 조화 혹은 대립의 관계를 보여 준다면, 인간적 대상은 시인 자신의 내면적 사색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누구나 가지게 되는 삶이 소망과 갈등의 내용이 정서화되어 표현될 때, 우리는 인간의 본질과 삶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인생의 꿈과 이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음 두줄시를 보자.

     

       일일은 일 일이는 이 일삼은 삼...
       이리 쉬운 일단 인생

     

       구일은 구 구이 십팔 구삼 이십칠...
       저리 어려운 구구단 인생
                    -주정연의 '구구단 인생'

     

      쉽게 살면 그렇게도 쉬운 인생이 어렵게 살면 그토록 어렵다는 것이다. 인생을 보는 시각이 이처럼 대조적일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쉽게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어렵게 사는 것인가, 그리고 쉽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어렵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얻어야 할 것이다.

     

       젓갈 팔아 모은 재산 대학에 죄다 내어주시고
       젓국에 절어 웃는 젓갈할메 주름진 웃음,
                    -주정연의 '성자'

     

      어렵게 살면서도 아끼고 아껴 번 돈 모두를 대학에 장학금으로 내어 놓고 다시 젓국에 절어 사는 오늘의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시이다. 단 두 줄로 된 이 시만 읽어도 넘치는 인간미가 제 것만 알고 자기만을 돌보며 아귀다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림을 알 수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시에는 심오하고 관념적인 형이상학의 세계를 탐구하려는 태도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현실적 의미에 대한 자각과 제안이 함축되어 있다.

  3) 사회·역사적 대상

      시가 인생의 여러 국면을 다룸에 있어서 어두운 고뇌의 모습을 비추든 아름다운 영상을 그리든, 그 궁극적인 의의는 사람이 자신의 현실 위에 올바르게 설 수 있는 지표를 제시해 주는 데 있다. 이러한 가치가 외면화될 때, 시는 사회와 역사를 시적 대상으로 삼게 된다.

     

       붉은 눈물 잘잘잘 흐르던 영산강 둑에는 나무들
       제 그림자 살찌우며 말없이 그리움 키워가고 있다
                           -비움의 '5.18 광주 그 후'

     

      5.18은 우리 근세사에서 씻을 수 없는 민족의 상처다. 붉은 피를 흘리면 민주화를 외치다가 죽어간 영령들을 생각하며 쓴 시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시대의 사회·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시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학은 근원적인 의미의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두줄시
글쓴이 : 최병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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