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두줄시의 맥을 찾아(2)
이별 후에
신혜원
아무 일 없이 씻고 밥 먹고 티비 보고
그런데 꼭 그 커피만 마시면 체한다니까
사랑하던 이가 떠났습니다. 보내고 싶지 않은 이가, 참으로 사랑하는 이가 '내' 곁을 떠났을 때의 슬픔이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이별의 노래를 들어왔습니다. 이별이 살아 헤어지는 생이별이든 영원한 죽음의 세계로 보낸 사별이든 그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가지가지입니다. 마음껏 통곡하는 사람,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람, 혀를 깨물며 눈물을 참는 사람, 정신을 잃고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 김소월의 그 많은 이별 노래 가운데서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초혼'이 있는가 하면, 체념과 축복으로 이별의 슬픔을 승화한 '진달래꽃'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려의 '가시리'가 '진달래꽃'으로 이어졌다면 같은 시대의 '서경별곡'은 '초혼'과 맥을 같이한다 할 것입니다.
이별의 슬픔을 격정적이고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방법과 최대한 자기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하는 방법 중에서 어느 것이 독자의 마음을 더 감동시키는가 하는 것은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굳이 비교해서 말한다면 앞의 것이 스위치 하나로 온도를 올리고 내리고 끊는 요즈음의 보일러 난방이라면, 뒤의 것은 저녁에 덮힌 구들장이 밤이 깊도록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온돌방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신혜원의 이 두줄시는 이별의 슬픔을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으면서도 그 슬픔을 실감하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이별 후에'라는 제목으로 보아 사랑하는 이와 분명 헤어졌습니다.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잊으려 헤어지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씻고 밥 먹고 티비'를 봅니다. 아무런 애원도 원망도 자책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밤을 새워 점점 식어가다가 끝내 차디찬 돌이 되고 마는 새벽 온돌방의 구들장처럼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시기만 하면 체한다는 그 '커피'가 문제입니다. 그 커피는 서로 만나 사랑하다가 어느 날 서로 사랑을 고백할 때 마시던 커피이거나, 서로 슬픔을 삼키며 헤어질 때 마시던 커피임이 분명합니다. 사랑이 한창 무르익고 있을 때 마시던 커피라면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사랑의 기쁨을 떨쳐야 하는 오늘의 슬픔이 '체함'일 것이요, 헤어지던 날 마지막으로 마시던 커피라면 '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지 말라고, 함께 있어 달라고' 애원하며 있는 힘을 다하여 붙잡지 못한 회한의 슬픔이 '체함'일 것입니다. 이렇듯 '체함'은 더할 수 없는 슬픔의 형상입니다. 함께 마셨던 '커피'를 매개로 하여 이별의 슬픔을 떨치지 못하는 자아의 몸부림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마시면 체할 그 커피는 왜 마시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시적 표현의 묘를 모르는 당치 않은 말입니다. 이 시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헤어진 그를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아니, 생각한다는 말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이 난다는 말입니다.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살려고 하는데 그 커피를 마시고 체한다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이 시는 2003년 3월 발행한 두줄시 제3집의 청소년 두줄시 중 한 편입니다. 고교 2학년인 신혜원양은 자신의 특수한 체험을 단 두 줄에 담아 일반화하였습니다. 한국문학의 전통적인 이별의 정서를 현대적으로 승화한 신혜원의 '이별 후에'에서 우리는 미래의 국민시로 자리매김할 두줄시의 맥을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