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의 지문 · 우렁찬 고요/詩에서 詩를 배우다
복효근 - 폐차와 나팔꽃
솔정수 윤성조
2009. 5. 13. 07:56
폐차는
부활 같은 건 꿈꾸지 않나보다
쓸 만한 부품은 성한 놈들에게 내어주고
폐차장엔 끝끝내
끌고 온 길들을 놓아주어버린
분해되는 낡은 차가 그래서 평화스럽다
영생은 믿지 않아
윤회가 시작된 것일까 벌써
나팔꽃 한 가닥이 기어올라 안테나에 꽃을 피웠다
비켜라 경적을 울려대며
회생할 순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달릴 줄만 알았던
한참 광나던 시절엔 어찌 알았으리
필요로 하는 것들에게 하나하나 내어주고
마지막 끝자리마저 나팔꽃에게 내어주고
제 몸이 비어갈수록 채워지는 햇살의 따스함
폐차는 성자처럼
나팔꽃이 시들 때까지만
지상에 남아있기를 기도할지도 모른다
폐차가 아름다운 어느 아침